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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Miami 2015-12-11 03:31:16
제 목 연호와 달력 이야기
안녕하십니까? 12월 7일에 대설(大雪)이 지났으니 서울은 한 겨울입니다.

22일이면 동지가 되고 밤이 제일 길고 깊은 겨울이 됩니다.



보름 단위로 24절기를 보노라면 일년의 시간 흐름이 조금 손에 잡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선조들은 음력 24절기 따라 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3주가 지나면,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됩니다.

오늘은 '연호와 달력' 이야기를 보냅니다.  이형모 드림







우리나라의 연호와 달력



전통시대에는 임금의 재위 연대에 붙이는 칭호로서 연호가 사용되었다.

연호는 어느 특정 해부터 햇수를 세기 위해 사용했는데,

대개 한 왕이 재위에 올랐을 때 새로 사용하곤 했다.



예를 들면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영락(永樂), 백제 위덕왕이 건흥(建興),

신라 지증왕이 연수(延壽)란 연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시기에 중국의 연호를 사용했다.



이에 대해 일본역사가들은 우리 선조가 사대사상에 빠져서 자주독립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해 왔다. 우리 학계에도 그런 주장이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대주의냐? 실용적 표준이냐?



또 중국 연호가 쓰여 있는 우리의 유물이 중국의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많았다.

세종 때의 측우기가 바로 그 예이다. 이에 대해 한국외대 박성래 교수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우리가 중국의 연호를 자주 사용해 온 까닭을 중국의 달력을 매해 쉽게 구해 쓸 수 있었고,

중국 문화권과의 교류에 있어 편의를 고려했던 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연호를 쓴 시기가 대개 중국과 교류가 없거나 사이가 나쁘던 때,

또는 중국의 나라들이 혼란을 겪던 때였다는 사실은 이 해석과 부합한다.



오늘날 우리는 역(曆)의 기원 시점, 달의 이름, 길이 등에 유럽인의 역사적 배경이

짙게 묻어 있는 서양력을 쓰고 있다. 또 하루의 시간은 일본 동경에서 바라보는

해의 운동에 따른 시간을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춘분날 낮 12시 정오에 동경에서는 해가 남중하지만, 서울에서는 약 30분 뒤에야 남중한다.



그러나 우리가 서양력을 채택하고, 동경 표준시를 쓰는 것이

서구인과 일본인에 대한 숭배심 때문이라고 보는 현대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혹 그렇게 해석하는 역사학자가 1,000년 뒤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음력과 단기를 버리고 서력을 쓰고 있는 이유는, 오늘날 세계인의 대다수가 쓰고 있는

서력을 사용하는 것이 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국민의 생활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빈번한 교류를 해 온 우리 선조들이 중국의 역과 연호를 채택해 온 주 목적을

똑같은 이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세종의 ‘칠정산 내편’



조선은 국초에 수시력, 대통력, 선명력을 함께 사용하다가 세종 때에 이순지, 김담 등이

수시력과 대통력의 장점을 취하여 만든 역서 ‘칠정산 내편’을 시행했다(1433년).

이것은 관측 지점을 한양에 둔 자주적인 역서이다.

또 아랍의 회회력을 보정하는 한편, 역시 한양을 관측지로 한 ‘칠정산 외편’도 편찬했다.



효종 4년(1653)에는 서양 역법을 사용한 청의 시헌력(1645~1741)을 시행했다.

정조 6년(1782)에는 시헌력법에 의한 천세력이 간행되었다.



그 뒤 조선은 1896년에 이르러 음양력을 버리고 서양식 태양력을 공식 채택하기에 이른다.

태양력 시행을 알리는 당시 관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 개국 504년(1895) 11월 17일을 505년(1896) 1월 1일로 한다.”





태양력과 서력기원의 등장



즉,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음력은 민속 절기나 생일과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이를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농사일의 시점과 계절의 중요한 변화를 여전히 24절기로 파악했기 때문에 이 역시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음력과 절기는 서양식 태양력 달력에도 반드시 병기해야 할 역으로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역의 기원을 단군조선 개국 원년으로 한 단기를 사용해 오다가,

1961년 12월 국가 재건 최고회의에서 ‘연호에 관한 법률’을 결의함으로써

공식 문서에서 단군기원을 버리고 서력기원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로 말미암아 단기는 서기와 한동안 같이 쓰이다가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박창범)에서 발췌.

*새해는 서력기원 2016년이고 단군기원 4349년이다.



2015년 12월 10일

재외동포신문 이형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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